출처: 새벽 편지  2008.11.7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부침개를 부쳐 먹으려다가
문득 시집간 딸아이가 생각이 났어요.
비만 오면 딸아이는 부침개를 부쳐달라고 졸라대곤 했죠.
가까이 사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 여보...세...요"
딸아이의 목소리는 눈물범벅이 되어
알아듣기 힘들었어요.
"엄마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 말에 딸아이는 더욱 크게 울어댔죠.

"무슨 일 있는 거야?"
"아이는 어디가 아픈지 분유도 안 먹고,
화장실 변기는 고장이 나서 물이 안 내려가요.
게다가 애 아빠는 저녁에 친구를 데리고 온데요.
비 오는데 시장도 하나도 안 봤는데..."
그 말을 마친 딸아이는 다시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걱정하지마.
엄마가 가면서 화장실 고치는 사람 부를게.
그리고 장도 대충 봐 가지고 갈 테니까, 그만 울래두.
니가 좋아하는 부침개 부쳐 가지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그런데 김서방은 언제쯤 들어오니?"

내 말에 갑자기 딸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딸아이는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 저기.... 제 남편은
김 서방이 아니라.... 박 서방인데요..."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가 5321번 아닌가요?"
"여기는 5421번인데요."

순간 맥이 탁 풀렸습니다.
딸아이의 목소리도 제대로 못 알아듣다니...참...
"미안해요. 나는 내 딸인 줄 알고...."
사과하며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전화 건너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저기 그럼 안 오실 건가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요?

"죄송해요. 저는 친정 엄마가 없어요.
잘못 걸린 전화라는 걸 알았는데,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어요.

우리 엄마가 살아 계시면
이런 날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얼마나 생각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전화가 걸려 왔어요. 엄마 같아서....
우리 친정 엄마 같아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전화기 저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기다려요. 내가 금방 갈께요.
그런데 거기가 어디쯤이유?"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 나 오늘 딸네 집에 다녀와야 하니까
저녁 드시고 들어오세요."


- 양찬선 옮김(낮은울타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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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사연도 많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새벽편지 가족님들의
살아온 생활사처럼 말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슴이 뭉클한
시간들을 지나오신 과거가 있으십니까?

간혹 한 번씩 꺼내어 행복해하고
흐뭇해하고, 따스한 시간을
가지는 것 또한 새벽편지 가족님들만의
특권(?)이겠지요?





- 작은 사연 속에서도 감격의 물결은 넘쳐납니다. -




Posted by 세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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