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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욱이의 편지

"난 못 죽어, 인제!" (부제 : 용욱이의 편지)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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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못 죽어, 인제!"

(부제 : 용욱이의 편지)

"사랑하는 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구로동에 사는 용욱이에요.

구로국민학교 3학년이구요.

우리는 벌집에 살아요.

벌집이 무언지 예수님은 아시지요.

한 울타리에 55가구가 사는데요,

방벽에 1,2,3,4, … 번호가 써 있어요.

우리 집은 32번이에요.

화장실은 동네 공중변소를 쓰는데요,

아침에는 줄을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해요.

줄을 설 때마다 저는 21번 방에 사는 순희 보기가 창피해

못 본 척 하거나 참았다가 학교 화장실에 가기도 해요.

우리 식구는요

외할머니, 엄마, 내 여동생 용숙이… 이렇게 네 식구예요.

우리 방은 할머니 말씀대로 라면 박스만 해서

네 식구가 다같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로 2동 술집에 나가서 일하시는 엄마는

술집에서 주무시고 새벽에 오셔요.

할머니는 한 달에 두 번(그것도 운이 좋아야)

취로사업장에 가서 돈을 버시구요.

아빠는 청송감호소라는 데 계시는데

엄마는 우리보고 아빠가 죽었다고 그래요.

예수님, 우리는 참 가난해요.

그래서 동회에서 구호양식을 주는데도

도시락 못 싸가는 날이 더 많아요.

엄마는 술을 많이 먹어서 간이 나쁘다는데도

매일 술 취해서 어린애마냥 엉엉 우시길 잘하고

“이 애물들아, 왜 태어났니… 같이 죽어 버리자”하실 때가 많아요.

지난 4월의 부활절 날 제가 엄마 생각을 하고

회개하면서 운 것을 예수님은 아시지요?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했었거든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줄만 알았단 말예요.

근데 그날은 제가 죄인인 걸 깨달았어요.

친구애들이 우리 엄마보고 ‘작부’라고 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구요.

매일 술 먹고 주정하고 울면서 같이 죽자구 하는

엄마가 미운적이 참 많았거든요.

부활절날, “엄마 미워한 것 용서해 주세요” 하고

예수님께 기도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시면서

“용욱아 내가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그만 와락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그날 교회에서 찐 계란 두 개를 부활절 선물로 주길래

그걸 집에 갖고와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드리면서

생전 처음으로 전도를 했어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구요.

몸이 아파서 누워 계시던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흥! 구원만 받아서 어떻게 사니?” 하시면서

“집 주인이 전세금 50만원에 월세 3만원을 올려 내라는데,

구원이 아니라 50만 원만 내면 니가 예수를 믿지 말래도 믿겠다.” 하셨어요.

저는 엄마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신바람나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기도드린 거 예수님은 아시지요?

학교 갔다 집에 올 때도 몰래 교회에 들어가서 기도했잖아요.

근데 마침 어린이날 기념 글짓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있다면서

우리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뽑아서 보내 주셨어요.

저는 옛날을 그리워하면서 지금은 청송에 가 계신 아버지와

서초동에서 꽃가게를 하며 행복하게 살던 때 얘기를 썼어요.

청송에 계신 아버지도 어린이날에는 그때를 분명히 생각하실 테니

그날만은 엄마도 술 취하지 마시고 울지도 마시고 그때만 생각해 주신다면

5월은 진짜 내 세상이 될 것 같다고 썼어요.

예수님, 그날 제가 1등 상 타고 얼마나 기뻐했는지도 아시지요?

바로 그날, 엄마는 너무 아파서 술도 못 드시고 울지도 못하셨어요.

며칠 후 뜻밖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글짓기 대회 날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던 동화작가 할아버지께서

물어 물어 우리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대접할게 없다고 할머니는 동네 구멍가게에 급히 내려가셔서

사이다 한 병을 사 오셨지요.

동화작가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똑똑한 아들을 두셨으니

힘을 내라고 위로해 주셨어요.

엄마는 눈물만 줄줄 흘리시면서 엄마가 일나가시는 술집에 가시면

약주라도 한 잔 대접하겠다고 했어요.

동화 할아버지는 대접은 이 다음에 받겠다고 하시면서

할아버지가 쓴 동화책 다섯 권을 놓고 가셨어요.

밤 늦게까지 할아버지께서 지으신 동화책을 재미있게 읽던 저는

그만 깜짝 놀랐어요.

동화책 갈피에서 흰 봉투 하나가 툭 떨어지는 게 아니겠어요?

펴 보니 저는 생전 처음보는 수표였어요.

엄마에게 보여드렸더니 엄마는 “세상에 이럴수가…” 하시며

제 양 어깨를 꽉 잡고

“고마우신 분이야. 세상에 아직도 이런 분이 계시는구나.”하셨어요.

저는 마음 속으로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오셨지만 예수님이 주신 거예요’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그런 내 맘을 알아채셨는지

“얘, 용욱아, 예수님이 구 원만 주신 게 아니구 50만 원을 주셨구나.”

큰 소리로 말씀하시면서 울음을 터트렸어요.

할머니도 울고 저도 눈물이 났어요.

동생 용숙이도 괜히 따라 울면서

“오빠, 그럼 우리 안 쫓겨나구 여기서 살아도 되는 거야? 했어요.

너무나 신기한 일이 주일에 또 벌어졌어요.

엄마가 주일 아침, 교회에 가시겠다고 화장을 엷게 하고 나선 것이었어요.

그리곤 대예배에 가셔서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솔방울만 해 가지고 집에 오셨어오.

나는 엄마가 우셨길래

또 같이 죽자고 하시는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는데,

“용욱아, 그 할아버지한테 얼른 편지 써라.

엄마가 안 죽고 살아서 전세금은 꼭 갚아 드리겠다구.

난 못 죽어, 인제!” 하셨어요.

엄마가 안 죽겠다는 맘을 먹으신 게 저는 너무나 기뻐서

‘얏호!’ 소리를 지를 뻔 했어요.

고마우신 예수님!

참 좋으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 사랑으로 주신 수표는

저도 이담에 커서 꼭 갚아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가 어른이 될 때까지

동화 할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살아 계시도록 예수님께서 돌봐 주세요.

그것만은 약속해 주세요.

예수님!

너무나 좋으신 예수님!

이 세상 최고의 예수님을 용욱이가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 용욱이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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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진]

벌집 모양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다고 해서 속칭 '벌집촌'으로 불리는 구로구 일대 쪽방촌. 방한칸과 부엌을 합쳐 3-4평에 불과한 이 공간에서 2-4명 가량이 살고 있다.

[출처] 낮은울타리 1991년 5월호

[설명]

위 '용욱이의 편지글'은 1991년 5월호에 기독교 잡지 '낮은울타리'에 최초로 실렸다.

이 글은 '난 못죽어 인제'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당시만 해도 창간된 지 얼마 안되었던 이 잡지에 실린 용욱 군의 글은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던 1999년 1월 '낮은 울타리' 편집국은 100호특집 기념으로 그 동안 실렸던 글 중 좋은 글을 선별해 특집호에 실었고, '난 못죽어 인제'도 그에 포함됐다.

이후 2001년경 위 글은 '용욱이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통해 이슈화되면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훈화시간'에 위 글을 들은 한 초등 여학생이 만원짜리 한장과 5천원짜리 문화상품권을 구로초등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1999년 특집호에 용욱이의 편지를 게재했던 <낮은울타리>의 서정희 편집국 차장은 "10년 전에 편집국에서 일했던 직원은 현재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 어떤 경위로 1991년에 그 글이 실렸는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2022년 5월 현재 위 "용욱이의 편지"는 뮤지컬로 제작되어 공연되고 있다.

 

 

Posted by 세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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